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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 임한주의 독립운동과 덕명의숙’ 학술대회 개최

  • 작성자주우영
  • 작성일2012-12-07 08:12:08
  • 조회수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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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소장: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청양문화원(원장:이진우)은 12월 7일 청양문화예술회관에서 ‘성헌 임한주의 독립운동과 덕명의숙’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청양 출신인 성헌(惺軒) 임한주(林翰周) 선생은 한말 홍주의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홍주의병에 관한 귀중한 자료인 ‘홍양기사(洪陽紀事)’를 남겼다. 1919년에는 전국의 유림들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한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덕명의숙에서 선생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많은 학생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의 이러한 항일투쟁의 역사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금번 학술대회에서는 ‘임한주의 학문과 독립운동(김상기: 충남대학교 교수)ㆍ성헌 임한주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특징(곽호제: 청양대학교 교수)ㆍ성헌 임한주의 생애와 덕명의숙(김형목: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 발표되어 임한주 선생의 독립운동을 새롭게 조명한다.

 

 김상기 교수는 임한주 선생의 학문과 독립운동을 새롭게 밝힌다. 김상기 교수는 임한주 선생이 남당 한원진의 학풍을 계승하고 있으며, 홍주의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홍주의병 기록인 ‘홍양기사’를 남겼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1919년 유림들의 독립운동인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해 김복한의 권유로 장서에 서명하고, 전국의 사민과 市廛, 학교에 보내는 포고문을 작성하여 배포하게 하였고, 1927년에는 김복한의 문인들이 홍성에서 조직한 儒敎扶植會에 참여하여 청양의 화성에 설립된 성동지부의 지부장을 맡았음을 새롭게 제시한다. 또한 김복한과 이설, 전양진, 이상구, 이식, 안항식 등 홍주의병을 비롯한 민족지사들의 행장이나 묘지문 등을 편찬하여 그들의 행적을 후세에 전했으며, 1924년부터 청양 화성 평택임씨 문중에서 설립한 덕명의숙에서 후학양성에 주력했음도 새롭게 제시한다. 김상기 교수는 임한주의 선생의 훈육을 받은 임경호ㆍ임긍호 등의 활동도 밝힌다. 임경호는 파리장서를 중국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임시정부의 국내특파원으로 군자금모금운동을 전개했고, 임긍호는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한혈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국내에 파견되어 군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했음을 새롭게 고증할 예정이다. 아울러 임상덕 등 그의 가르침을 받은 청양군 화성면 일대의 청년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민족독립운동에 앞장섰음도 밝힐 예정이다.

 

 곽호제 교수는 임한주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자료의 특징을 발표한다. 곽호제교수는 "파변집"ㆍ"파변속집"ㆍ"성헌선생문집"ㆍ"우당만록" 등 임한주 선생의 저술활동을 살펴보고, 이들 자료에서 독립운동 관련자료들의 특징을 제시한다. 곽호제 교수는 발표에서 임한주선생의 저술을 보면 기존에 알려진 「홍양기사」외에도 많은 독립운동관련를 찾아 볼 수 있으나 지금까지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이들 자료들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임을 밝힌다.

 

 김형목 연구위원은 임한주의 생애와 평택임씨 문주에서 설립한 덕명의숙의 위상을 조명한다. 김형목은 연구위원은 한말 청양지역의 국권회복에 대한 인식변화와 청양지역의 계몽운동과 학교설립을 발표한다. 아울러 임한주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고 덕명의숙의 민족운동사에서의 위상을 밝힌다. 김형목 연구위원은 발표에서 덕명의숙은 문중학교의 성격에서 벗어나 공공교육기관으로 변화되었으며 신구 학문 절충과 여학생 입학 허용 등은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역사적인 산물이었으며, 덕명의숙의 민족교육과 창학정신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계승되었음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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