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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이승선 교수] 아베 내각의 경제도발, 한국 언론은 등불이 되고 있는가? <2019.07.17.중도일보>

  • 작성자오제훈
  • 등록일2019-07-18
  • 조회수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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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의 할아버지가 일본의 제철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평양에 살던 두 사람은 1943년 오사카 제철소에 가서 하루 8시간씩 일했다. 기술을 습득해 준다고 꾀었으나 일본 회사는 철 파이프 관 속에 들어가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일을 시켰다. 노역은 고되고 식사량은 매우 적었다. 회사를 벗어나려다가 잡혀 구타를 당했다. 임금은 일방적으로 저금통장에 입금 당했다. 회사는 통장과 도장을 빼앗았다. 회사는 끝내 통장과 도장을 돌려주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두 사람은 함경도 청진의 일본 제철소에 배치되었다. 하루 12시간씩 일했으나 임금은 전혀 받지 못했다. 대전의 할아버지 한 분은 1941년 보국대로 동원되었다. 일본의 그 제철소가 운영하는 다른 공장에서 일했다. 재료를 용광로에 넣고 철을 가마에 넣는 노역에 종사했다. 용광로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험한 상처를 입었다. 석 달 병상 끝에 겨우 상처가 아물었다.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일본의 군인으로 징병이 되어 고베 부대에 배치되었다. 네 번째 군산 할아버지 역시 일본 그 회사의 또 다른 공장에 배치되었다. 고된 노역에 공장을 벗어나려다가 잡혔다. 구타를 당한 일주일 동안 식사도 제공받지 못했다. 다른 세 분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일본이 항복한 후에야 겨우 고향에 돌아왔다........[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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